Saturday, November 17, 2018

부례선 선교사 이야기 - 2

부례선 선교사의 꿈은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이었으나 조동교회에서 순교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될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순교 후 1932년  부활절에  부례선 선교사의 꿈을 이루는데 미국의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나섰고 어린이들의 헌금으로  1932년 12월 29일에 청주에 Purdy Memorial Bible Institute가   완공되었다.


    1935년 부례선 선교사 부인과 두자녀가 Purdy Memorial Bible Institute 을 방문하였으며 미국 귀국 후 두자녀는 아버지에 이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특히 아들 John은 미국 북장로 교회 Curriculum Editor로 사역하였으며 여러권의 신앙서적을 집필하였다.





       1933년에 발간된 미국의 Christianity Today에 청주의 한부선 (Bruce F. Hunt) 목사님이 기고한 글에 의하면 Purdy Memorial Bible Institute은 어린이들의 한푼 한푼 헌금으로 건립된 "개미들의 금자탑" 이라고 하였으며 당시의 13개도 중에서 제일 많은교육이 이루어지는   성경교육 기관중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부선 선교사가 기고한 Korean Letter 내용 앞부분
한부선 선교사가 기고한 Korean Letter의 중간 부분(부례선 기념 성경 학교 소개)







Friday, November 16, 2018

부례선 선교사 이야기-3 (아들 John C. Purdy)


     부례선 선교사와 부인 Emily 사이에 1925년 10월 15일 청주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은 John C. Purdy 이다.  태어난지 1살도 안되어 부친이 장티푸스(Typhoid)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John과 John의 누나 Martha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 갔다.   부인은 미국에서 모금활동을 통하여 청주에 Purdy Memorial Bible Institute을 건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1935년 두자녀과 함께 청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John은 Wooster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원을 다녔고 스위스의 Basel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위스콘신 주 교회에서 12년 동안 목사로 봉사하였다.  그후 30여년 동안 미국 북장로교회 Curriculum 편집자로 활동하였으며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많은 교육자료를 만들었다.  또한 성직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을 위한 3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Parables at Work.   Returning God's Call.  God with a Human Face.) 



    John은 1986년 충북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에 건립된 부례선 선교사 기념 예배당 건립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한국을 방문하는 등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딴 교회의 헌당 예배에 참석하였던 시간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부인 Mary와 함께 참석한 조동교회 
부례선 선교사 기념 예배당 입구에서.


     John은 2007년 7월31일 미국 뉴멕시코주 Santa Fe에서 81세로 소천하였는데 그의 누나 Martha가 조동교회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John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프린스턴 신학원 졸업후 선교사에 지원하였으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John은 교회에 대한 사랑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며 많은 글과 책을 통하여 수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John과 부인 Mary사이에 Margaret, David, Thomas 3자녀가 출생하였는데 언젠가 이분들이 할아버지의 선교지를 방문하게 될 날이 기다려 진다.


Thursday, November 15, 2018

부례선 선교사 이야기-4 (딸 Martha L. Purdy)


    Martha는 1924년 충북 청주에서 아버지 부례선 선교사와 어머니 Emily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주에서 자라났고  Wooster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49년 Behren 목사와 결혼하였고  United Church of Christ 의 여성 기관에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Purdy Memorial Bible Institute 방문 (왼쪽 부터 Martha, Emily, John)

1970년대에는 World Day of Prayer 의장으로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오랜동안 일상생활에서 묵묵히 복음 메시지를 실천하여 살아가는 여성에게 수여되는 Valiant Woman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Martha 는 2017년 4월 20일에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소천하였는데 Susan, Jay, Kathy, Barbara 4자녀를 두었다.  2008년 동생 John C. Purdy에 대한 사연을 적은 편지를 조동교회에 보냈는데 자녀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이 선교사 이었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민노아 선교사 이야기

충북지방에서 부례선 선교사와 함께 선교하던 민노아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충북노회역사편찬위원회 자료.  cafe.daum.net/70years.cb/Ks9S/19 )

민노아(Frederick Scheiblin Miller, 1866~1937) 목사는 초기 미국 북 장로회 청주선교부의 선교사로, 충북 선교의 개척자이다. 1866년 12월 10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의사인 아버지(W. M. Miller)와 어머니 (Susan Walker) 사이에서 태어나 1889년 피츠버그대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뉴욕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다. 민노아 선교사는 1892년에 아내와 함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만을 안고 낯설고 척박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온 후에 민노아 목사는 충청도 지방에 선교의 뜻을 두고 1900년에 김흥경(金興京) 조사와 함께 청주 시장에 들러 노방전도를 했고 1904년에 가족과 함께 청주로 내려왔으며 1937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충북 선교의 아버지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청주선교부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청주제일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청남학교 등 근대학교를 세워 충북 근대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많은 전도지와 소책자를 제작하여 배포하면서 문서선교에 힘썼다.

민노아 선교사는 문학과 음악에 재능이 있었기에 초기에 찬송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때 많은 찬송가를 번역하기도 하고 손수 작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문학가, 음악가로서 약 40여 편의 곡을 한국어로 번역해 내었는데, 그 중 『찬송시』(1905년)에 그의 번역 및 창작시 25편이 수록되었고 《찬송가, 1908》에도 실렸는데, 그 중 다음의 5편은 번역이 아니라 그가 한국어로 지은 창작 찬송이며, 이 찬송들은 100년 동안 변함없이 사용되어 현 21세기 찬송가에도 그대로 실려 애창되고 있다. 그 5편은 다음과 같다.

  • “예수님은 누구신가”(96장),
  • “주의 말씀 듣고서”(204장),
  • “맘 가난한 사람”(427장),
  • “예수 영광 버리사”(451)
  • “공중 나는 새를 보라”(588장)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의 가사가 태어난 배경을 보면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미국에서 갓 결혼하여 낯선 한국 땅에 왔는데, 내내 자식이 없어 쓸쓸하였다. 자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 입국 6년만인 1898년 11월에 첫 아들 프레드 밀러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들이 조선의 열악한 환경과 위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02년 3월에 둘째 아들 프랭크 밀러가 태어났는데 하루 만에 하나님이 그 아이도 데려가셨다. 둘째 아들을  떠나보낸 아픔을 당한 지 1년 뒤인 1903년 6월 17일, 그의 사랑스런 아내가 38세의 일기로 또 세상을 떠났다.

조선 땅에서 두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모든 일을 지켜보던 조선 사람들은 민노아 선교사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누구기에 이렇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겁니까?” 조롱 반, 위로 반이 섞인 어조로 민노아 선교사에게 질문한 것이다. 주변의 조소와 물음에 민노아 선교사는 응답대신 찬양을 지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현행 찬송가의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이다.

일생을 충북 복음 선교에 헌신한 민노아 목사는 충북 지역의 선교에 착수한 지 36년만인 1936년 12월에 정년으로 은퇴하였다. 그리고 필리핀과 중국의 남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1937년 10월 6일 향년 71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현재 일신학원 구내에 안장되어 있으며, 그의 선교기념비 비문에 새겨진 “주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성구는 오늘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6bdsfoRxzk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
(민노아 선교사의 비문: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부례선 선교사의 비문: “죽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Sunday, November 4, 2018

조동교회 역사



  • 1912년 설립
  • 1926년 부례선 선교사 순교
  • 1986년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부례선 선교사 기념예배당 건립 (대한 예수교 장로회 충북노회)


2018년 11월 4일 조동교회 명예권사 임명 및 권사 임직 예식

11월 4일 오후 3시 명예권사 3분, 권사 4분의 임직식이
충북노회장 산남교회 이종민 목사, 영동매곡교회 전영근 목사, 대전 문창교회 성동근 목사,
조동교회 홍다복 목사,  영동교회 이홍우 장로,
대전 오정교회 및 조동교회 교우 여러분과 가족이 함께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2018년 11월 4일 청주상당교회 제9 희락여전도회 선교팀 이야기

청주 상당교회 제9 희락 여전도회 20분이 조동교회의 주일 1부 예배에 참석한 후  주민과 함께 식사와 교제를 나누고 에어콘 설치 및 커텐 교체를 지원해 주셨다.    예배당 분위기가 훨씬 깔금해졌고 유난히 더운 여름이 와도 예배당이 시원하게 될 것 같다.



교회 안내

교회 본당 모습 용화면 조동리 주민들과  휴양림에 여행오신 분들이 함께 예배하고 교제를 나누는 민주지산 휴양림 입구에 있는 교회입니다. 1912년 설립된 이후로 선교사들과 사역자들의 헌신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위치: 충청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