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방에서 부례선 선교사와 함께 선교하던 민노아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충북노회역사편찬위원회 자료. cafe.daum.net/70years.cb/Ks9S/19 )
민노아(Frederick Scheiblin Miller, 1866~1937) 목사는 초기 미국 북 장로회 청주선교부의 선교사로, 충북 선교의 개척자이다. 1866년 12월 10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의사인 아버지(W. M. Miller)와 어머니 (Susan Walker) 사이에서 태어나 1889년 피츠버그대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뉴욕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다. 민노아 선교사는 1892년에 아내와 함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만을 안고 낯설고 척박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온 후에 민노아 목사는 충청도 지방에 선교의 뜻을 두고 1900년에 김흥경(金興京) 조사와 함께 청주 시장에 들러 노방전도를 했고 1904년에 가족과 함께 청주로 내려왔으며 1937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충북 선교의 아버지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청주선교부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청주제일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청남학교 등 근대학교를 세워 충북 근대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많은 전도지와 소책자를 제작하여 배포하면서 문서선교에 힘썼다.
민노아 선교사는 문학과 음악에 재능이 있었기에 초기에 찬송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때 많은 찬송가를 번역하기도 하고 손수 작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문학가, 음악가로서 약 40여 편의 곡을 한국어로 번역해 내었는데, 그 중 『찬송시』(1905년)에 그의 번역 및 창작시 25편이 수록되었고 《찬송가, 1908》에도 실렸는데, 그 중 다음의 5편은 번역이 아니라 그가 한국어로 지은 창작 찬송이며, 이 찬송들은 100년 동안 변함없이 사용되어 현 21세기 찬송가에도 그대로 실려 애창되고 있다. 그 5편은 다음과 같다.
- “예수님은 누구신가”(96장),
- “주의 말씀 듣고서”(204장),
- “맘 가난한 사람”(427장),
- “예수 영광 버리사”(451)
- “공중 나는 새를 보라”(588장)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의 가사가 태어난 배경을 보면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미국에서 갓 결혼하여 낯선 한국 땅에 왔는데, 내내 자식이 없어 쓸쓸하였다. 자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 입국 6년만인 1898년 11월에 첫 아들 프레드 밀러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들이 조선의 열악한 환경과 위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02년 3월에 둘째 아들 프랭크 밀러가 태어났는데 하루 만에 하나님이 그 아이도 데려가셨다. 둘째 아들을 떠나보낸 아픔을 당한 지 1년 뒤인 1903년 6월 17일, 그의 사랑스런 아내가 38세의 일기로 또 세상을 떠났다.
조선 땅에서 두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모든 일을 지켜보던 조선 사람들은 민노아 선교사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누구기에 이렇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겁니까?” 조롱 반, 위로 반이 섞인 어조로 민노아 선교사에게 질문한 것이다. 주변의 조소와 물음에 민노아 선교사는 응답대신 찬양을 지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현행 찬송가의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이다.
일생을 충북 복음 선교에 헌신한 민노아 목사는 충북 지역의 선교에 착수한 지 36년만인 1936년 12월에 정년으로 은퇴하였다. 그리고 필리핀과 중국의 남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1937년 10월 6일 향년 71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현재 일신학원 구내에 안장되어 있으며, 그의 선교기념비 비문에 새겨진 “주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성구는 오늘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6bdsfoRx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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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
(민노아 선교사의 비문: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부례선 선교사의 비문: “죽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